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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사드 논란, 한민구 국방부장관 한민구 할아버지 한봉수 의병장 친일논란은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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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구 사드 논란, 한민구 국방부장관 한민구 할아버지 한봉수 의병장 친일논란은 무엇?



한민구 국방부장관과 사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한민구 사드 논란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사드 비밀반입과 관련해 곤혹을 치르고 있습니다.

앞서 국방부는 사드 발사드 2기를 국내에 설치했는데요.

그러나 최근 청와대가 사드 발사대 2기 외에 4기가 추가로 국내에 비밀리에 반입되었다고 발표했으며,

청와대는 국방부가 사드 4기 추가반입 사실을 보고서에 의도적으로 누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한민구 국방부장관의 태도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요.

앞서 정의용 안보실장에게 사드 4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게 있었냐며 오히려 반문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은 한민구 장관에게 직접 확인하여 4기 추가반입 사실을 최종확인했다고 합니다.

한민구 장관은 고의적인 보고누락 의혹을 받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조사 결과를 지켜볼 일이라며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미국방부는 사드 발사대 4기의 반입사실은 투명한 절차를 거쳤다고 입장을 밝혔는데요.

배치 과정 내내 모든 조치가 매우 투명했다고 하네요.


어찌된 일인지 조사하면 다 나오겠지요? 지금은 박근혜 정권이 아니니 투명한 조사를 기대해봅니다.

그럼 한민구 장관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도록 할께요.


한민구 국방부장관 그리고 할아버지 친일논란은 무엇?


[한민구 프로필/나이 학력]



한민구는 정무직공무원으로 현재 국방부장관입니다.

1951년생으로 한민구 나이는 67살이네요.

한민구는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육군사관학교를 나왔는데요. 

이후 서울대학교 서양학학사를 거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 석사를 지냈습니다.

이에 한민구 최종학력은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 석사입니다.



그건 한민구는 의병장의 후손이란 평가로 존경받는 군인이었는데요.

지난 한일군사협정에서 한민구 장관이 서명을 하며 친일행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또한 의병장이었던 한민구 할아버지의 친일논란까지 조명되기도 했지요.




한민구 할아버지는 한봉수 선생인데요. 한봉수 선생은 구한말 의병장이었습니다.

한봉수 의병장은 1872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07년에 일본 헌병대를 습격했습니다.

또한 해산군인 100명을 모아 일본헌병대장을 사살하고 일본군 수송대를 습격해 독립자금을 모았다고 하는데요.



이후 일본의 압박에 의병을 해산하고 피신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1910년 6월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내란죄 및 강도·살인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요.

같은해 8월 일본의 합방대사령 조치에 의해 사면되었습니다.

이후 1919년 독립운동가 손병희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을 계속했다고 하는데요.

1963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어 국가유공자로 등록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한민구 조부인 한봉수 선생에 대해 친일행적 논란이 제기되었는데요.

당시 한민구가 국방부장관 후보자였던 시절 제기되었으나 일단락 되었는데요.

그 후 한봉수 선생의 친일행적 논란으 또 한번 제기되었습니다.


[한민구 조부 한봉수 선생 친일주장]



-구한말 의병장 연구로 명망 높은 이태룡 박사가 친일의혹 제기

-한봉수 선생이 일제에 체포된 뒤 귀순해 다른 거물 의병장을 색출하려는 일제에 적극 협력했다.

-한봉수 선생 친일 의혹의 근거로 일제가 작성한 비밀문서를 제시함.

-1910년 3월 11일 내부 경무국장이 충청북도 경찰부장 앞으로 보낸 '고비수(高秘收) 제1817호'에

 '폭도(의병) 소수괴(小首魁) 한봉수(韓鳳洙)가 당국에 사면(赦免)을 원출(願出)하였다'라고 적혀있음.

-사면을 받으면 '문태서'의 소재를 고해 보답하겠다'고 한봉수가 밝혔다'는 내용이 있음.

-1910년 3월 31일 충청북도 경찰부장이 내부 경무국 보안과장에게 보낸 '충북경비수(忠北警秘收) 제338호의 1'에

 실제로 귀순한 한봉수가 일본 경찰과 함께 문태서를 찾아다녔음.



-영동경찰서장의 직접 지휘 하에 행동시켰던 바… 한봉수는 3월 19일, 영동을 출발하여 동 군내와 전북 무주·금산 등의 

 각 곳을 수사하고, 28일 저녁 영동으로 돌아왔으나 문태서의 소재는 발견하지 못했다.

-한봉수는 같은 해 6월 29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교수형 판결을 받았으나 

 일제가 경술국치를 맞아 8월 29일 단행한 대사령(대사면)에서 면소 판결을 받음.

-의병장으로 활동한 자이면서 면소 판결을 받은 것은 전국에서 한봉수가 유일하다.


이태룡 박사의 주장에 따르면 문서들에서 한봉수 선생의 친일행적을 찾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일부에서는 일본에 협력한 행적을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위장 귀순으로 보고 있는데

이유는 3.1만세 독립운동 후 다시 감옥에 갇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봉수 선생이 일제에 귀순에 의병장 색출 작업에 협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닌데요. 이 때문에 한봉수 선생의 친일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민구 사드 논란, 한민구 국방부장관 한민구 할아버지 한봉수 의병장 친일논란은 무엇?

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사드 비밀반입과 관련하여 말을 아끼고 있는데요.

군대의 수장인 그가 사드 4기 반입을 모른다고 반문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그리고 한봉수 선생은 친일논란이 있는데요. 기사들을 찾아보니 영화 암살의 이정재가 

잠시 생각나기도 했네요.

사드 보고누락에 대해 청와대의 철저한 조사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며 이번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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