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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비선실세다룬천일야사진성여왕,진성여왕하야와박근혜탄핵역사는반복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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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비선실세다룬천일야사진성여왕,진성여왕하야와박근혜탄핵역사는반복되나?



28일 채널A ‘천일야사’에서는 신라 진성여왕과 숙부의 위험한 관계가 그려졌습니다.


천일야사 진성여왕은 어떤 내용이?



887년, 신라 50대 정강왕은 후사를 남기지 못해 여동생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유언을 남깁니다.

바로 우리 역사상 세 번째 여왕, 진성여왕인데요.


진성여왕은 즉위 한 달이 지나 매일 밤 궁녀 복장으로 월담을 하였습니다.

숙부 위홍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진성여왕과 숙부 위홍은 스무살이 넘는 나이차이가 났으며, 숙부는 유부남이었습니다.

진성여왕과 위홍은 서로 사통하였으며, 진성여왕은 위홍에게 청혼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숙부 위홍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고 진성여왕은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크게 상심했습니다.

이에 숙모 부호부인은 진성여왕에게 한 화랑을 소개했고 진성여왕은 그 남자를 정인으로 삼았습니다.


반전!?


그러나 사실 숙모 부호부인은 남편 위홍과 진성여왕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복수를 하기 위해 남자를 소개한 것이었죠!


숙모 부호부인은 온갖 감언이설과 남자를 이용해 진성여왕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진성여왕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시작했다는

내용입니다.



천일야사에서는 숙부와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진성여왕과 

복수를 위해 진성여왕을 마음대로 조종하기 위한 숙모의 이야기가 그려졌는데요.

현재 대한민국 박근혜 대통령과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야기와 비슷하여 많은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그럼 진성여왕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진성여왕은 누구인가?


진성여왕은 신라 3인의 여왕 중 마지막 여왕입니다.

진성여왕은 경문과 문의왕후의 소생이다. 둘째 오라버니인 정강왕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서거하자 정강왕의 유언에 따라 887년 음력 7월에 왕위를 이어받아 즉위하였다. 소행이 좋지 못하고 음란하기 그지없었던 진성여왕은 색욕에 빠져 수많은 미소년들을 징집하여 처소로 불러들인 뒤 음사를 즐기는 데에만 주력하여 나랏일을 제대로 돌보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여왕과 관계를 맺은 정부들과 여왕에게 아첨하는 간신들의 무리가 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상벌이 함부로 행해지고, 뇌물이 난무하고, 관직을 매수하는 등 조정의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렇듯 왕실과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자 자연스레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해가는 데다가 여왕의 심한 낭비로 국고가 텅텅 비어 각 지방의 호족들을 닦달하여 세금 납세를 독촉하였다. 그러자 민심은 점차 흉흉해져 여기저기서 민란과 도적이 숱하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방의 호족들은 각자 독자적 세력을 키우는 데 전념하였다. 조정에서는 그들을 도적이라고 부르며 군대를 파견해 진압을 하려 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그 뒤로 조정의 힘은 겨우 수도인 서라벌 주변에 한정될 정도로 급격히 쇠락해갔으며, 지방 호족들은 서로 간에 힘겨루기 양상을 보였다. 치열한 싸움 끝에 살아남은 견훤 궁예가 각자 나라를 세우자 후삼국 시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렇듯 나라가 분열해가자 894년 진성여왕은 최치원을 아찬으로 임명하여 그의 조언에 따라 조정을 일신하고자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던 도중 897년 음력 6월 1일 (양력 7월 4일),[2] 병마에 시달리던 진성여왕은 헌강왕의 서자(庶子)인 를 왕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러고는 그해 897년 음력 12월 4일 (양력 12월 31일)에 승하하였다.

각간 김위홍 대구화상에게 명하여 《삼대목》을 편찬케 하였으나 전하지 않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진성여왕을 상당히 비판적으로 보고있습니다.


특히삼국사기에는 진성여왕이 위홍이 죽은 뒤 젊은 미남 두세 명을 남몰래 불러들여 음란하게 지내고, 그들에게 요직을 맡기면서 국정이 문란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거리에 국정을 비판하는 글이 붙을 정도로 민심이 크게 동요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는 유모인 부호부인과 그녀의 남편인 위홍 등 서너 명의 총신들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국정을 어지럽혀 도적들이 벌떼처럼 일어났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최치원의 사사위표에는 진성여왕이 사심이 없고 욕심이 적으며, 몸에 병이 많아 한가함을 좋아하고, 말해야 할 때가 된 뒤에야 말을 하고, 한번 뜻한 바는 빼앗지 못하는 굳은 의지를 지닌 인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최치원이 쓴 양위표나 낭혜화상탑비등에서도 진성여왕을 성군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하네요.


진성여왕과 박근혜,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 역사에는 여자 지도자가 3명 있었습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입니다. 이 가운데 진성여왕은 1천년 역사의 신라를 무너뜨린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그리고 현재 박근혜 대통령까지 합하면 4명이 되겠군요.


진성여왕의 최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막다른 궁지에 몰린 진성여왕은 자신의 오빠인 헌강왕의 서자 요를 왕태자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다고 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자진해 ‘하야’를 한 것입니다.



그럼 현재의 여성 지도자 박근혜는 어떤가요?

최순실과 함께 권력을 유지하는데만 힘쓰고 국민을 돌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탄핵을 당하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진성여왕이 재위하던 신라말의 시대와 비슷한 것 같네요.

비선실세로 인한 정국파탄, 그리고 하야와 탄핵...



지금까지 신라시대비선실세다룬천일야사진성여왕,진성여왕하야와박근혜탄핵역사는반복되나?에 대한 포스팅이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네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

이 것이 우리가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할 이유인 것 같습니다.


그럼 진성여왕에 대한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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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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